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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을 때,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취하고 나서, 더 정확하게는, 자취하고 난 이후
병을 앓았다가 거의 다 나았을 시점부터 가장 큰 소소한 생활속의 즐거움 중에 하나였던 것이
주말마다 동생과 엄마와 갔던 맥*날드였다.

내가 살던 자취방에서 맥*날드까진 걸어서는 불가능한 거리였고
마을버스를 타고선 약 3~40분 정도 걸리던 거리였는데
거의 매주 엄마, 동생과 함께 갔었다.

드라이브 겸 외식 겸 가족화합(?)의 자리였던 거다. 

엄마는 세트도 안 시키고 항상 치킨버거 하나에 콜라 하나, 동생은 빅맥, 나는 상하이.
매주 그것의 연속이었고 2~3시간씩 수다떨며 오는 것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얘기하다가 화장실에 갔다올 때면 엄마는 항상 내 안경을 가져가선
정성스럽게 닦아오곤 했는데 그 땐 대수롭게 넘겼던 것이
여기서 생각해보니 말로 표현하기 싫을 정도로 벅차게 다가온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엄마도 감정표현에 있어서 아주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평소엔 그 소위 애정표현이라 불리우는 말이나 행동을 자주하진 않지만
가끔씩 정말 가끔씩 그걸 나중에야 알아차릴 수 있을만큼 특정한 행동으로 표현할 때가 있는데
문득 생각나는 내 안경이 그것 중 하나였다.

어떤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안경이 아주 자주 더러워져서
하루에도 몇 번씩 닦아주지 않으면 시야가 방해될 정도로 지저분해 지는데
오늘 아침 비누로도 한 번 닦아야 겠단 생각에
'귀찮아'란 생각을 되뇌이며 안경을 닦다가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그 매주, 엄마는 내 안경을 정성스레 닦고 씻겨내고 말리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그것이 엄마의 애정표현이었다는 것을 1년 후에나 이렇게 깨닫고 있으니까.

출국 3개월 전부터는 '독일은 추운 나라니까'라며 조그만한 조끼를 하나 짰었는데,
겨울옷을 꺼내 정리하다 문득 저 조끼를 보니 참 기분이 묘했다.
안경과 조끼말고 내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엄마의 애정표현엔 또 어떤것이 있을까 생각하니
원래 못난줄은 알지만 내가 딸이라는 것이 미웠다.

..그래서 오늘 저 옷을 꺼내입고 나가서
친구한테 '우리 엄마가 직접 만든거야'라며 자랑했다.

나는 내 스스로 나 자신을 일렉트라 콤플렉스에 찌든 찌질이라며 욕할때가 있을만큼
내가 '아빠 콤플렉스'를 앓고있는 자신을 원망할 때가 많은데
어찌 생각해보면 그 최고의 피해자는 엄마인 것 같다.

'가장'이라는 자리까지 채우기 위해 철없는 애 둘을 데리고
가장 밑바닥에서 부터 빈 손으로 시작해야 했던 엄마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으며
그런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애정표현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냥 집에 오다가 안경을 벗고
매주마다 정성스레 안경을 닦앗을 엄마를 생각하니 문득 엄마가 참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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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6 07:49 트랙백 0 댓글 0